강처럼 선교사 (O국, 후원:빌레몬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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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산재건교회 댓글 0건 조회 1,809회 작성일 22-04-07 14:07본문
마음의 동역자님 ,
주님의 소망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 가운데 오만 정탐을 감사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거의 1년 8개월 만에 방문한 오만은 정부 정책인 오만 현지인의 노동력 강화로 외국인 근로자와 외국 교수들이 많이 오만을
떠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가르쳤던 수도의 대학을 방문했는데 제가 6여 년 전 오만의 한 지방 대학에서 가르친 현지 학생이 교수가 되어 반갑게
인사하여 그를 축복했습니다. 제가 다시 오면 받아주겠다고 하며 친분이 있었던 아랍계 학장은 그 학교를 떠나고 현지인이
새 학장이 되어 일하고, 다른 아랍계 학과장은 평교수가 되고 그 자리에 파트타임 현지인 교수가 학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외국인 인력을 줄이면서 더 많은 현지인들이 일을 하게 되어 좋아보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상업 과목이 있으면 지원해 보려고 학교 교장이나 인사 담당자를 만나려고 갔는데 학교 입구 수위실에서 수위가
만날 수 없다며 수위실 벽에 있는 인사담당자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보내면 된다며 학교 출입을 막았습니다.
11년전 창립멤버로 제가 섬겼던 지방 대학에서 옛 동료인 러시아 국적의 교수를 만나 이력서를 내었지만 취업자리는 없었습니다.
두 번 이혼하여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애들을 가진 이 교수는 필리핀 여인과 세 번째 결혼을 하여 그 지방에 살면서 힘든 자신의
인생길에 바른 길로 가고 싶다며 지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외국인 교수들이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날까
고민하는데 다시 오려고 하는 저를 의아해하며 오지 말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갈 곳이 없어 마지못해 있는 것 같은 그 교수를 위해
주님께서 바른 길로 인도하시도록 함께 기도하며 그를 축복했습니다.
한편, 제가 복음을 전했었던 오만의 세 젊은이들은 높은 현지 실업율 속에서 다 직장을 잡고 두 명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어 감사했습니다.
뜨거운 날씨 속에 방문했던 학교들의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사춘기 딸과 함께 한 오만 정탐은 딸에게는 고향을 방문한 것 같은 기쁨과
설렘이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고 저에게는 현지인집에 자며 교제하며 그들을 축복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문이 닫힌 걸
확인하는 기간이었지만, 전체적으로 감사한 정탐여행이었습니다.
1년 8개월 년 전 오만에서 독일로 안식년으로 올 때 그 당시 계획은 2022년 여름에 다시 오만으로 대학교에 직업을 구해 딸은
독일 기숙사 학교에 남겨두고 아내와 어린 아들만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안식년 기간이지만 독일 선교사 자녀학교에서 풀타임으로 재정부에서 섬기던 중, 2021년 5월경 우크라이나에 본사가 있는 한 한국인
기독 사업가를 통해 두바이의 프로젝트가 있는데 저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왔었습니다. 무역, 회계, 세무, 그리고 은행 업무를
총괄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 업무들은 제가 지금까지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이고 은행
업무는 독일에서 하고 있는 일로 제 모든 경험을 하나로 통합하여 섬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만이 아닌 아랍에미라트의
두바이이기에 단체와 교회와 상의한 결과 두 곳이 한 지역에 속하고 저희 단체도 두바이에 팀이 있기에 두바이에서 일하는 것에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오만 현지인들에게 돌아온다고 했었기에 그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 다 두바이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며 두바이와 오만은 무스캇보다 더 가까운 곳이니 언제든 방문이 가능하다고 흔쾌히 두바이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며 말씀 보는 중에 시편 96편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렸습니다.
그래서 두바이로 가는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기 직전 두바이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동남아시아의 다른 도시로 변경되면서 그 곳에서 일 할 수
있는지 제안이 왔으나 걸프 아랍이 아니어서 그 프로젝트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만부터 길을 두드리자는 마음으로
오만 정탐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제가 근무했었던 대학들을 방문하여 현지 외국 교수들의 10~20% 월급 삭감, 과도한 행정 업무, 오만 현지인
교수 채용 증가, 박사 교수 자격 제한, 나이 제한 등의 상황을 보고 왔습니다.
원래 저희가족 생각은 이번 여름에 걸프 아랍에 돌아갈 때에 올 가을에 11학년 되는 딸 조이는 이 곳 기숙사 학교에 남겨두고
(기숙사 학생은 9학년부터 가능함) 7학년 되는 아들 준이만 데리고 걸프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만 정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독일에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제 마음에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면서 제 마음을 깊이 나누며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4 가족이 모두 모여, 오만의 상황들을 나누고 이 때에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제 마음을 나누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를 바라며 우리 부부가 걸프 지역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딸과, 독일에 남고 싶다고 우는 아들과,
독일에 있게 되면 주님의 분명한 소명이 있어야 한다는 아내와 말씀을 보며 기도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주님이 개인적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편 46편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 가정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시46:4,5,10)”이 저희 가정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마음이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생각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아내는 즉각 응답하였습니다. 저에게 주신
시편 96편 말씀과 아내에게 주신 위의 말씀들을 저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았고, 우리 가정과 미래 가운데서 이루어
가시기를 선포하고 순종하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이는 아직도 기도 중에 있습니다.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독일 선교사 학교 측에서는 제가 이 곳에 남아 사역하기를 원한다면 남아서 선교사 자녀 학교에서 재정부
사역, 멘토 사역, 제자 훈련 사역등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곳 도시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들어와 난민 센터가 지어지고 시청에서 러시아 통역 자원자를 모집하는데
주님이 긍휼한 마음을 아내에게 부어주셔서 아내가 자원하였습니다.
제가 오만에 간 사이에 아내와 아들이 시내를 걷다가 아들이 지갑을 잃어버려 찾고 있는데 페이스북을 통하여 한 독일인이 지갑을
발견하여 그 독일인집에 아내와 아들이 지갑을 찾으러가니 그 지갑을 주운 사람이 그 집에 최근에 머물기 시작한 우크라이나 난민
가족이었습니다. 아내가 러시아어로 그들과 이야기하며 그 다음 날에 독일학교에 우크라이나 난민 가족의 딸이 입학하는데 독일
학교장과 우크라이나 가족 사이에서 통역하며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그 가족을 집에 초대하여 그 가족이 좋아하는 플로프를 함께 먹고 귀한 교제를 나누며 전쟁의 참상을 들었습니다. 남편은
아직 우크라이나에서 자원봉사자로 전쟁에 있고 아내는 28살, 9살 딸과 5살 아들이 현재 저희 마을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마을에는 아랍에서 온 난민들도 있어 그들에 대한 주님의 긍휼하심과 구원의 소망이 저희 가정의 섬김을 통해 역사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의 동역자님,
저의 상황과 마음들을 여러분과 주님앞에 정직하게 드러내며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저희의 뜻이 아닌, 주님의 손에 있는 선물을 구하는
것이 아닌, 주님만을 구하는 이 과정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에 빚진자 강호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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